사람은 음식을 먹고 양육을 하며 가축은 사료를 먹여 사육한다고 한다. 먹는 것은 같은데 사람은 음식이고 가축은 사료이다. 음식과 사료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공직에서 퇴직하여 시골에 사는 아버지가 서울에 사는 아들 집을 방문했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며느리가 점심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고 조금 있으니 철 가방을 든 중국 식당 배달원이 음식배달을 해왔고 식탁에 배달된 음식이 놓이자 아버지는 일어서면서 “나 너의 집에 사료 먹으러 오지 않았다.” “ 사료라니요.“ ”너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사료와 음식도 구별 못 하느냐?” 하면서 집을 나선 아버지는 둘째 집을 찾아갔다.
둘째 며느리는 반겨 맞이하면서 “아버님 제가 밥을 지으려니 조금 기다리세요.” 하면서 밥을 짓고 된장찌개 국을 끓여 정성껏 밥상을 차려서 아버지께 밥상을 올리면서 “아버님 제 음식 솜씨가 모자라지만 많이 드셔요.” 아버지는 둘째 며느리가 정성껏 마련한 밥과 된장국을 들면서 “둘째야 네가 만든 음식 맛이 참 좋구나.” 하면서 밥을 더 달라 해서 먹고 시골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처럼 오신 아버지 점심대접을 영양가 높은 중국 음식을 대접하려는 큰며느리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버지는 큰며느리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고 싶었던 것이며 한 일이 열 일 이라고 아버지를 푸대접하는 며느리가 못마땅했던 것이며, 둘째 집은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며느리의 친절과 정성이 담긴 음식은 값싼 재료로 만든 음식이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음식과 사료가 무엇인지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음식은 마시고 먹는 것인데 정성이 담겨 만든 것을 뜻하며, 사료란 영양가는 높을지라도 정성이 담기지 않은 먹을거리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집에서 사육하는 가축의 먹이는 영양가 높은 것을 주어 살찌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음식은 먹고 살찌는 것과 관계없이 정성껏 만든 사랑이 담긴 먹고 마시는 것을 뜻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가 젖꼭지를 물려 젖을 먹이고 아기는 젖을 빨아 먹으면서 어머니의 체온과 사랑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아기들은 태어나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아 모유를 먹어보지도 못하고 영양가 많은 우유젖꼭지를 빨고 있고 가짜젖꼭지를 빨고 있으니 태어나서부터 음식이 아닌 영양가 높은 사료를 먹고 있지 않은지!
가짜젖꼭지를 빨면서 불신의 싹이 트고 있지 않은지! 사랑하는 귀여운 아기에게 사료를 먹이고 싶은 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유 먹이기를 산모들이 싫어한다니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농약 공해 속에서 살고 있다. 국산 농산품이 수입농산품보다 값이 비싸지만, 국산을 선호하는 것은 국산은 믿을 수 있고 무공해 식품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사료가 아닌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제공하려는 주부들의 정성 어린 마음에서 일 것이다.
따라서 설날 차례 음식이나 제사 음식은 값비싼 음식이 아니라 지극 정성으로 만든 음식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가축에 공급되는 사료는 대부분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다. 영양가 높은 사료를 만들어 축산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일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재료는 건강을 위한 위생적 식품을 가지고 정성어린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식품회사에서는 사람이 먹는 음식은 사료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정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식품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우리 국민의 식생활은 제조과정을 알 수 없는 값비싼 외식보다는 장수촌 사람들처럼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 적게 먹는 소식 음식으로 전환해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 짐승이 먹는 사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는 음식과 사료를 구별해서 먹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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