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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와 김대중 전 대통령
-궤변과 요설로 세상 떠날 때까지 말장난 하시면 어쩌나-
온갖 루머에 휩싸여 있던 가수 나훈아의 기자회견은 노래 공연보다 멋지고 드라마 보다 드라마틱했다. 시중에 떠돌던 괴상한 소문의 진위(眞僞)가 궁굼해 TV를 보다가 그의 설득력있는 언변과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 철저한 직업의식,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성숙성에 잔잔한 감동까지 느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의 자기 행적을 차근차근 밝히면서 시중에 떠돌던 괴상한 소문이 루머였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나갔다. 확인도 없이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기만한 기자들의 무책임과 대중매체의 선정성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자신의 루머에 얹혀 피해를 본 "두명의 여배우는 펜대가 죽인 셈"이라고 격분하면서 "그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김혜수, 김선아 우리 후배 처자들을 바로 잡아 달라. 꼭 바로 잡아주셔야 한다"며 애원하듯이 호소했다.
악성 루머에 시달려온 나훈아는 1시간가량의 기자회견을 통해 루머로 입었던 상처를 몇 배 보상 받고도 남을 만큼 남는 장사(?)를 했다. 어느 정치인의 말보다 진지하고 납득할 수 있었고 울림이 컸다. 그는 역시 대스타였고 大人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자신감 있고 논리정연하고 의연해 보였다.
그런데 쓸데없는 잡념인가? 나훈아를 보면서 “통일부를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느냐”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이 귓전을 때리고 노쇠해 가는 그의 모습이 자꾸 비교되는 것은...
“통일부를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느냐”는 말은 수사(修辭)로는 틀린데 하나 없고 그럴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수사적 기교요 궤변이요 교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순진하거나 순수한 사람들은 여기에 속아 온 것이다.
한나라당은 "통일부가 없으면 통일이 안 되느냐"고 맞받아쳤다. 그 말도 언듯 생각하면 그럴듯한 수사학적 기교이다. 말의 속임수로 주고받는 논전은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판에서는 말장난을 말장난으로 맞받아칠 수밖에 없는 언어의 유희가 난무하는 것이다.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자, "햇볕정책의 실패"라며 여론이 들끓었을 때 DJ는 "햇볕 정책이 무슨 죄가 있느냐, 왜 죄 없는 햇볕정책을 가지고 그러느냐"고 목소리를 높혔었다. 이는 마치 "칼에 맞아 죽었으니 칼이 문제지 왜 죄 없는 사람을 가지고 그러느냐"고 살인자를 싸고도는 것과 같은 어거지다.
"나는 약속을 안 지킨 적은 있지만 평생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던 DJ의 말과, 장인의 좌익 활동 시비가 일자 “그러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한 노무현의 기막힌 응수는 '말의 속임수로서는 궤변 교과서에 모셔야 할 명언중의 명언(?)'들이다.
이와 같은 말의 속임수는 나치 독일의 宣傳相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큰 거짓말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선전선동 수법이다. 논란이 되는 문제를 극도로 단순화 하거나, 때로는 논점을 바꾸고 때로는 논점을 흔들어 빠져나가는 수법은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말 사기치기 전술이다. 순진한 대중은 그럴싸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고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은 김정일과 꿍짝을 맞춘 좌파정권이 10년 동안 귀가 아프도록 외쳐온 自主니, 우리 민족끼리니, 통일이니, 민족화합이니, 전쟁없는 평화니, 햇볕정책이니...하는 그럴듯해 보이는 말에 속아서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상황까지 왔던 것이다.
가수 나훈아를 보며 떠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제 모든 면에서 너무 노쇠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중심적 아집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같아 딱하게 보인다. 민심이 어떻고 국익이야 어떻든 궤변과 요설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말장난이나 하시면 어쩌나 엉터리 전도사는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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