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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나라 위해 목숨 바친 병사들… 한국과 외국의 너무 다른 대접

조태형 2012. 11. 20. 05:54

[화제]나라 위해 목숨 바친 병사들… 한국과 외국의 너무 다른 대접


연평도포격 2주년을 맞아 11월19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가 몹시도 저를 서글프게 하였습니다. 
이라크전에서 부상을 당한 미군 캔스너중사는 부상을 당하는 순간부터 국가, 지역사회, 이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부상한 캔스너중사를 영웅취급하면서 따뜻하게 보살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연평도에서 포격을 받고 부상을 당한 부상병들은 국가 및 주변으로부터의 무관심 속에 잊혀지고 귀찮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취급을 받고 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환대해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호주에서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는 범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도 
포함하였으니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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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자 조선일보 기사내용

이라크戰 부상병 "국가·이웃이 안아준 6년… 행복했다"

폭발물에 부상 갠스너 중사 - 비행기 오르니 "영웅이 탔다" 모든 승객, 기립박수로 맞아
돌아온 집엔 '웰컴' 플래카드… 휠체어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가족도 모르게 집 내부 수리도
부대 최고 훈장 받고 재활훈련, 정부 지원으로 방산업체 취직


"브라이언이 다쳤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군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셰릴 갠스너(30)는 6년 전 이라크전에서 부상한 미군 중사 브라이언 갠스너(34)의 아내다. 브라이언은 당시 장갑차를 운전하다 조수석 하단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발목을 크게 다쳤고, 오른쪽 다리와 왼쪽 허벅지, 오른쪽 손목에 파편이 박혔다.

그때부터 셰릴은 블로그에 남편 간병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블로그에는 국가와 지역 주민, 각종 민간단체가 얼마나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부상한 갠스너 부부의 '희생'을 보상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셰릴은 "가족과 친구, 국가와 지역사회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다"고 인터넷 신문 '라이크잇포타임'에 말했다.

 웃음 되찾은 갠스너 중사… 2006년 9월 28일 브라이언 갠스너 중사가 부대 최고 훈장인‘퍼플하트’를 수여받고 아내인 셰릴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셰릴은“군인의 아내로서 최고로 자랑스러웠던 순간”이라고 했다. /허핑턴포스트
2006년 7월 28일 오전 3시. 자고 있던 셰릴에게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부상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공포에 떨고 있던 셰릴에게 남편을 치료하던 의사가 곧이어 이메일을 보냈다. '방금 브라이언 몸에 있던 파편을 다 제거했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쓰여 있었다. 3일 뒤 브라이언에게 "사랑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 사이 국방부 관계자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남편의 상황을 알려주며 안심시켰다. 동네에 사는 다른 군인 부인들도 찾아와 셰릴에게 각종 선물이 담긴 보따리를 주면서 위로했다.

며칠 뒤 브라이언은 귀국해 워싱턴 D.C.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셰릴은 며칠간 브라이언을 병원에서 간호했다. 이후 셰릴과 브라이언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켄터키주(州)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기장은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 비행기에 영웅이 한 분 타셨습니다. 브라이언입니다. 승객 여러분, 우리의 영웅과 그의 부인을 잊지 마세요. 군인의 부인들은 미군 중에서도 가장 힘든 역할일 것입니다." 모든 승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셰릴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집에 도착하자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집 내부도 전역자처우협회(VA)에서 브라이언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싹 수리해 줘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셰릴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집도 고쳐져 있었고, 플래카드도 붙어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배려였다"고 말했다. 나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위한 사회의 시스템은 이렇게 소리없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해 9월 28일 브라이언은 부대 최고 훈장인 '퍼플 하트'를 받았다. 3개월 뒤 셰릴도 국가로부터 '몰리 피처 어워드'라는 상을 받았다. 미 포병과 방공협회에서 미군에게 헌신한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브라이언은 2008년 3월 정부 지원으로 방위산업체에 취직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초 셰릴은 워싱턴 D.C.의 한 행사에 초청받았다. 엘리자베스 돌 전(前) 상원의원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한 행사에 꼭 참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셰릴은 '나는 이들 중 한 명이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적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는 그들을 잊지 않은 것이다.

 

연평도 부상병의 울분… 군의관마저 "장애 급수 높이러 또 왔나"

"어쩌다가 안 좋은 일에,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것 같아요. 차라리 6·25나 월남전에 참여했으면 명예롭잖아요."

연평도 포격 도발 2년, 부상 장병들은 "당시의 일을 명예롭게 생각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포격 직후는 "빨리 복귀해서 김정일을 밀어버리자"라고 전우끼리 다짐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르다. '왠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생각에 밖에 돌아다니기가 꺼려졌다고 했다

김명철(22) 일병(포격 당시)은 지난 2009년 "남자가 되겠다"면서 해병대를 자원했다. 하지만 1년 뒤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경험한 후, 김 일병에게 눈물과 악몽은 일상이 돼 버렸다. 입대 전과 달리 이젠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더 나약하게 돌아온 것 같습니다…." 김 일병이 말했다.


 17일 대구 동구 각산동의 집에서 만난 김진권 일병이 몸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남강호 기자

김진권(22) 일병(포격 당시)은 부상 당한 지 1년 4개월 만인 지난 2월 경기도 국군수도병원에서 상병으로 퇴원했다. 가족을 빼고는 병원에서도, 집이 있는 대구에서도 그를 배웅하거나 마중한 사람은 없었다. 부상 후유증으로 오른쪽 발에 주먹만 한 혹이 생긴 그는 바깥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었다. "왜 다쳤느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둘러댔다. "사람들이 연평도 포격 사건과 천안함 사태를 구분 못 해요. 그렇게 계속 되풀이되다 보니 제가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17일 인천 서구 석남동 자택에서 만난 김명철(22) 일병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용국 기자

오른쪽 팔에 상처를 입은 김명철 일병은 지난해 악몽과 불면증을 견디다 못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진단을 받으러 군의관을 찾아갔다가 "장애 급수 높이려고 찾아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김 일병은 "근본적인 치료를 받으려고 찾아간 것인데…"라고 말했다. 김진권 일병은 지난 8일 군으로부터 전화 한 통 없이 "연평도 포격 2주기 행사 참여 여부를 (11월) 2일까지 알려달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호주의 현충일 생사 (호주국민들이 보고 배우는 것들)



동이트는 이른 새벽시간에 추모식(Dawn Service)이 전국에서 엄숙히
거행되고 2분간 묵념을 올립니다.



전쟁에 참전하여 임무를 수행한 참전용사들의 충절을 기리는 날.

호주에서 4월25일은 '안작데이(Anzac Day)' 입니다.



호주사람치고 친가이던 외가이던 자기 할아버지가 참전용사라는 것은
<굉장한 자랑거리> 여겨지고 있습니다.



현충일 Anzac Day는 호주에서는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이며
국민들에게 국가관 외에 전쟁이 주는 다양한 의미를 상기시키는 날입니다.




우리는 결코 잊지않는다이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LEST WE FORGET




Anzac Day엔 할아버지들이 반짝반짝하게 닦은 훈장을 가슴에 가득 달고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갑니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한 Anzac Day 전설은 세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추모행사가 끝나면 오전 9시에 가슴에 훈장 단 나이든 참전용사들이 손자,
증손자들 손을 잡고 Anzac Day의 하이라이트인 시가행진에 참석합니다.



퇴역 참전용사들이 각기 자기가 참전했던 전투의 부대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것을 보면 마치 현대사의 다큐멘타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TV는 행진을 생중계하고 시가에는 시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호합니다.




참전군인 등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민을 우대하는 제도는 호주에서 배워야
할 장점입니다. 손자들은 방학이 되면 할아버지를 모시고 주요 격전지였던
곳, 말레이아, 파퓨아뉴기니, 싱가폴, 태국같은 태평양 전쟁터나 갈리폴
리, 베트남같은 곳에 많이 다녀옵니다.



호주 국가보훈처는 호주 이민 온 한국의 월남전참전용사 일부 참전용사
수당 수혜자로 인정, 사망시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상당한 예우를 하고 있습
니다. (사망시는 배우자에게 일부 지급 !)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 걸고 전쟁터에 나간 참전용사를 대접하는 나라
치고, 번영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 새삼 떠오릅니다.



오후 5시30분에는 일몰식(Sunset Service Ceremony)이 거행되어 축제
분위기로 됩니다.  학교에서는 역사교육을 위한 민속촌 캠프에서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자 이들이 참전한 전쟁의 역사와 활약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이런 좋은 행사는 보도하지 않아 인터넷에서 호주 신문들
을 뒤져 안작데이 사진을 몇장 복사했습니다.

제발 우리나라 방송이나 신문들도
정치꾼들 쌈질하는 뉴스, 불법 부추기는 폭력데모, 사이비 종교꾼들의 반국가행위, <정의구현> 제사지내는 사제단, 김용철 스토리 등...만 지루하게 보도하지 말고 이제는 일등국민의 선진국 향하는 선도역할을 좀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참전용사들 세계언론이 칭송하는 멋진 군인들이란 걸 왜 모르십니까?
- 월남전과 한국 - www.viet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