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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탈북여성 얘기에 키득대는 아이들 - 부업,투잡,알바

조태형 2010. 7. 25. 07:16

팔리는 탈북여성 얘기에 키득대는 아이들

 

자유와 풍요를 줬지만 善(선)과 惡(악)의 근본 가치를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사진 위(증언하는 탈북여성)

아래(졸업식 뒷풀이에 나선 남한 고교생들)

 고교생 敎會(교회)수련회에 불려가 북한의 현실을 講義(강의)했다.

 

중국에서 팔려 다니는 탈북여성들 이야기를 하는데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말하는 자는 울고 있는데 듣는 자들은 히히덕댄다. 사내 녀석 서너 명은 듣기 싫다는 듯 핸드폰으로 장난질이다.
 
 事前(사전)에 교회 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청강한 100여 명 대부분 집안도 좋고 성적도 좋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유달리 교육열이 강하다는 말도 했다. 지난밤엔 새벽 까지 祈禱(기도)도 했단다.

 

전교조 교육을 받은 애들이 많은데 개의치 말고 하라는 권면(?)도 들었다.
 
 급하게 강연을 끝낸 뒤 먼지를 털면서 산골을 나왔다.

 5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민족의 未來(미래)에 가슴을 쓸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自由(자유)와 豊饒(풍요)를 줬지만 善(선)과 惡(악)의 근본 가치를 가르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영어단어 암기와 수학공식 적용에 능할지 모르나 罪(죄)를 짓고도 잘못을 모른다.
 
 돈과 肉體(육체)와 物質(물질)이 우상이 된 신세대는 성형수술 세계 1위, 색조화장품 소비량 1위, 음란사이트 접속율 1위의 경이적 기록과 함께 자살률 1위, 낙태율 1위의 엽기적 세태의 주연들이다.

 

청소년 흡연율과 음주율도 세계 1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른들은 공부만 잘 하고 돈만 잘 벌면 모든 걸 용서하는 세상을 만들고 그 결과 아이들은 뻔뻔해졌다. 죽어가는 同族(동족)을 보고도 통곡은커녕 코웃음 친다.

 

700만을 죽인 김일성·김정일 앞에서 忿怒(분노)칠 않는다. 모두 우리 어른이 한나라당 강용석 같은 자들을 최고의 모델로 삼아 키운 탓이다.」
 
 개, 돼지처럼 팔리는 탈북여성을 보며 키득대던 아이들도 언젠가 義憤(의분)을 갖기를 소망한다.

 달걀로 바위 치는 듯한 무력감이 짓눌렀지만 강연 내내 눈물 흘리던 몇몇의 아이도 있었다.

 

오늘의 퍽퍽한 강연도 먼 훗날 이 땅의 良心(양심)이 일어날 씨앗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을 깨운다.

*                              *                                      *

 

 

밀 이삭 다섯 개로 맞아 죽은 여덟 살 소녀

갈고리로 찍혀 불 위에 달린 14세 소년

 


갈고리로 찍혀 불 위에 달린 14세 소년 1.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난 靑年이 있다.

 

[김성욱] 

● ◎ 2005년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을 탈출한 신동혁氏는 최근 수기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출간했다.

신동혁씨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중 하나인 개천14호 관리소 완전통제구역에서 수용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죄수(罪囚)의 삶을 시작했다.

1996년 11월29일 어머니와 형이 탈출시도를 하여 공개처형을 당했으며, 본인은 14세 나이로 불고문 등 온갖 만행을 겪었다.

 2005년 1월2일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신씨는 같은 해 2월2일 중국으로 탈출해 이듬 해 8월10일 한국에 들어왔다.
신씨는 하나원 수료 이후에도 정치범수용소 경험과 충격 등으로 심각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2007년 1월부터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운영하는 「고문 및 PTSD상담팀」의 보호 하에 들어와,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아래는 「세상 밖으로 나오다」서평 및 요약 가운데 일부이다.

 

 

 


1.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난 靑年이 있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이런 말을 알지 못했다. 들어 본적도 없었다.


덧셈과 뺄셈, 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감정만을 학습했다. 10살 무렵부터 오후 10시까지 계속되는 18시간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일상적인 폭언, 폭행, 구타, 심지어 고문을 겪어야 했다. 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奴隸)로 사육(飼育)됐다.


2005년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을 탈출한 신동혁氏가「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펴냈다. 정치범수용소는 출소가 가능(可能)한「혁명화구역」과 출소가 불가능(不可能)한「완전통제구역」으로 구분된다.


탈북자 중 강철환氏 등 국내 정치범수용소 출신들은 모두 혁명화구역에 있던 이들이다. 신동혁氏는 완전통제구역을 탈출해 수기까지 출판한 최초의 인물이다. 신씨는 정치범수용소인「개천14호관리소」 탈출 후 중국으로 도망쳐, 지난 해 8월 한국에 왔다.


신동혁氏의 수기「세상 밖으로 나오다」는 북한 정권이 만들어 낸 지옥(地獄)의 기록이다. 수백만 양민을 나락(奈落)에 쳐 넣고 권세를 누려온 김일성 父子는 악마(惡魔)의 변종이다. 민족의 원수인 이런 집단은 멸절(滅絶)의 대상일 뿐 타협(妥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 갈고 리로 찍혀 불 위에 매달린 14세 소년


신동혁氏가 14살이던 1996년으로 돌아가 보자. 신씨는 어머니·형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4월6일에서 11월29일 반년 넘게 수용소 비밀감옥에 수감된다.  


끔찍한 고문도 자행된다. 14살 죄 없는 소년에게 꼬챙이로 배꼽 밑과 다리를 꽂아 매단 후 불로 태워졌다. 사람을 벌레처럼 여기는 이 곳을 「인민주권(人民主權)의 나라」로 부른 노무현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에 역겨움이 치솟았다. 신씨의 수기를 인용해보자. 


『두 명이 달라붙어서 내 옷을 모두 벗겼다. 나는 반항도 하지 않았고 옷이 홀딱 벗긴 채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는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운 뒤 리모컨을 작동시키니 다리가 천정 쪽으로 올라가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쿵』하고 부딪쳤다. 


그들은 나를 거꾸로 매단 상태에서 양 팔목을 밧줄로 묶었다. 밧줄을 끌어당기자 내 팔목이 천정 쪽으로 따라 올라갔다. 얼굴은 천정을 향하고 등은 바닥을 향해 공중에 누워있는 모양이 됐다. 바닥에서 약 1m정도 올라간 것 같았다...


옆 사람에게 뭔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숯불이 담긴 통이 들여졌고, 풍구(風具)를 돌려서 숯불을 점점 타오르게 했다. 그리고는 리모콘으로 쇠사슬을 내려 내 등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불에 닿도록 했다. 허리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살타는 소리가 지르르르 나고, 살타는 냄새도 났다. 입을 악물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온 몸을 요동치며 꿱꿱 소리쳤다. 『아...악! 아악!!』내가 몸을 심하게 요동치니까 그들은 숯불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허리에 닿도록 했다.


그래도 요동치자, 그들은 끝이 뾰족한 갈고리로 내 배꼽 아래(사타구니)를 찍어 관통시켰다. 허리가 너무 뜨거워 갈고리로 사타구니를 관통시켜도 아픈 감각이 없었다. 그래도 움직이자 오른쪽 허벅지 바깥쪽을 갈고리로 다시 찍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배꼽 아래쪽과 허벅지가 모두 갈고리에 찍힌 채로 계속 요동치다가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얼마동안 내 등에 불을 갔다댔는지 알 수 없다. 끝내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 만에 정신을 차렸는지 나도 모른다. 눈을 뜨지 역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기절해서 대소변을 보았던 것이다. 족쇄에 묶였던 발목은 움푹 패여 생살이 드러나 있었다. 조사원들이 옷을 입혀왔는데, 겨우 무릎을 끌고 일어나서 보니 허리가 쓰리고 아팠다. 손으로 만져보니 진물이 나오고 물집도 생겼다.』


3. 목욕 후 붉은 반점이 생겨나 죽어나갔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인간(人間)의 존엄(尊嚴)따윈 없다.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까지 저질러진다. 2차대전으로 끝이 난 저주(咀呪)의 의식이 지금 북한 땅에서 저질러지고 있다. 2004년 11월 어느 날 밤의 기억이다.


『그늘 밤 사상투쟁회에는 웬 인인지 4명의 보위원들이 함께 참가했다. 2명은 관리소에서 못 보던 외부인 같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느 호실에 「이」가 많은지 물었다...보위원은 남자호실 한 곳, 여자호실 한 곳을 지목한 다음 약(藥)을 주겠으니 그것으로 목욕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각 방에 20kg짜리 물통을 두 개씩 주었다. 그들이 준 약은 쌀뜨물 같이 뿌연 색 물이였고, 냄새는 밭에서 쓰던 「우아독수」라는 농약과 비슷했다.


그 물통을 받고 여자호실 5명과 남자호실 7명이 목욕을 했다. 당시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욕을 한 지 1주일이 지나가면서부터, 몸에 붉은 반점 「혼디(종기 같은 것으로 살에 고름이 생기는 것)」가 생겨나 곪아터졌다. 한 달 뒤에는 살이 문드러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고열에 시달렸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거의 죽어간다고 생각될 즈음, 트럭 한 대가 오더니 그들을 모두 싣고 갔다. 그리고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 약이 어떤 것이고 왜 그런 실험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다.』


인간은 대체 얼마나 잔인(殘忍)해질 수 있을까? 이런 동족의 현실을 방관하는 우리는 얼마나 무감각(無感覺)하고 이기적(利己的)인 것인가?


4. 이상하게 피가 나오지 않고 혹이 튀어나왔다


수용소에선 결혼(結婚)과 같은 人倫의 大事도 『일을 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용소가 허락하고 지정해 주기 전에는 남자도, 여자도 상대를 모른다. 어느 날 담당 보위지도원(수용소 관리)은 「일을 잘 해 온」 대상 남녀를 불러놓고, 훈시하며 결혼을 알려준다.


『야, 너희 둘 오늘부터 결혼이야. 알갔디? 앞으로 일을 열심히 하라. 일 안 하구 뺀질뺀질 대믄 알디? 다시 갈라 놓�어!』


신씨가 수감됐던 정치범수용소는 출소가 불가능한 소위 완전통제구역이다. 보위지도원의 통제 아래 죽는 날까지 혹사당한다.


이곳에선 『작업관계 外 3명 이상이 모여 대화할 수 없다.』『보위원 승인 없이 밤에 3명 이상 돌아다니면 총살(銃殺)당한다.』 『보위원에게 불만을 품은 경우·불성실한 경우·불복종한 경우, 시설물을 파괴한 경우, 도둑질한 경우』 모두 총살 대상이다.


정치범수용소에선 보위원의 사형(私刑)이 비일비재하다.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신씨는 1989년 6월경 인민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을 적고 있다.


소지품검사 증 같은 반 여덟 살 여자아이 주머니에서 밀 이삭 5개가 나왔다. 일상적 굶주림에 창고에서 밀 이삭 몇 개를 집어든 것이다. 『야 새끼야, 너 강냉이 따왔다. 너 새끼 손목아지 잘려 나가라구 길디』보위원 선생의 욕설과 함께 구타가 시작됐다. 


『아이를 무릎 꿇어 앉힌 채 지시봉으로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 머리에서는 피가 나오지 않고 혹이 사방에 튀어나왔다. 그러기를 1시간 30분 정도...그 아이는 끝내 기절했다. 코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그 아이를 부축해서 집까지 데려다 줬는데 그 날 저녁 끝내 죽었다고 한다...그 여자 아이는 참 곱게 생겼었다.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가 매 맞아 죽었어도 그 누구도 책임이 없다. 이것이 바로 보위부 14호 관리소의 현실인 것이다.(본문에서)』


책장을 넘기며 눈물이 맺혔다. 수용소에선 얼마나 많은 어린 소녀들, 소년들이 밀 이삭 몇 개 때문에 죽어왔던가?


5. 노인들을 얼리고 데워 죽였다.


1999년 12월, 개천14호 관리소는 영하 15도에서 20도까지 내려갔다. 신씨는 경사지 밭에 지게로 거름을 나르다 쉬던 중 발각된 4명의 노인 이야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보위지도원이 그들을 불러냈다. 신발과 바지를 벗기고 팬티 바람으로 맨 땅에 무릎을 꿇게 했다. 노인들은 오후 2시쯤부터 벌을 받았는데 저녁 7시경에는 휴게실 안으로 불러냈다.


구들바닥에 다시 무릎을 꿇어 앉혔다. 그리고는 사람이 델만큼 뜨겁도록 장작을 계속 넣었다. 그들의 발바닥과 무릎은 얼었다가 데어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우성 소리는 보위지도원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몇 달이 지난 후 그들은 끝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6. 자식과 남편 앞에서 처형당한 어머니


정치범수용소 탈출기도자는 공개처형(公開處刑) 대상이다. 신씨의 어머니와 형 역시 도망치다 붙잡혀 공개 처형당했다. 신씨는『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는 것조차 사치였는지 모른다.  


『공개처형은 어머니부터 시작됐다. 어머니 팔을 뒤로 묶은 채 나무상자 위에 올라 세웠다. 그리고 이들은 어머니 입만 가리고 눈은 가리지 않았다...교수형장에 매달려 있는 밧줄을 어머니 목에 건 다음, 그 광경은 차마 지켜 볼 수가 없었다.


세상에 자기 엄마와 형이 교수형과 총살을 당하는데 그것을 지켜 볼 아들과 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아버지 쪽을 보자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때가 되었는지 어머니가 밟고 있던 상자를 빼내었고, 상자를 빼내자마자 어머니는 대롱대롱 매달리기 시작했다. 밧줄은 점점 어머니의 목을 조여 갔다. 어머니는 마지막 발악으로 몸을 몇 번 요동치고는 잠잠해졌다. 그리고는 형의 차례였다. 『민족반역자 신희근을 향하여 총탄 세 발 쐈!!』


7. 탄차를 미는 열두 살 어린이들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람의 목숨은 파리보다 못해 보인다. 어린이들까지 탄광작업, 건설현장에 동원된다. 신씨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93년 6월 중순경 갱지원(탄광작업)을 나갔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열 두 살의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이 쓰는 탄광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불을 들었다. 얼굴은 탄가루로 뒤덮여 눈 흰 자위와 치아만이 하얗고 온통 검댕이었다...탄차를 밀고 한 10리 정도 나왔을 때, 옆에 있던 문성심이 발을 잘못 짚으면서 탄차 바퀴에 발이 찢겼다.


순간 좁은 갱 안에 12세 여자이이의 울음소리가 퍼졌다. 울음소리가 이렇게 소름끼치게 들려보기는 처음이었다...문성심의 신발을 벗겨 보니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이 바퀴에 눌리어 뼈가 부서진 상태였다. 이때 학급장 홍주현이 달려와 신발 끈으로 문성심의 발목을 묶어 피가 나오지 않게 지열하고 문성심을 탄차에 태웠다.』


8. 열네 살에서 열일곱 시신들, 모두 예쁜 여자 아이들, 남자아이들


1998년~1999년은 더욱 혹독한 날들이었다. 고등중학교(고등학교) 학생이던 신씨 등  개천14호 관리소 수감자들은 대동강 내 중형발전소 건설에 동원됐다. 신씨는 당시『하루에 3~4구의 시체가 나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공사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주검들을 수습하는 일을 직접 거들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이 사고로 죽어간 숫자는 신씨가 눈으로 본 것만 7명. 거기에 소문으로 들은 것까지 합하면 수십 명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이들의 나이는 모두 14세부터 17세. 모두 예쁜 여자 아이들, 남자 아이들이었다.

1999년 3월 신씨는 콘크리트 벽 밑에서 일하던 남녀학생 8명이 30미터 높이에서 추락한 사고를 목격한다. 결과는 뻔했다. 수십 톤 콘크리트에 깔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신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의 시체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보위원들은 하던 일을 계속 하라는 것이었다...건설 현장에서 누가 죽는다 해도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다. 단지 나의 목숨이 붙어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할 뿐이다. 발전소 건설 현장은 매일 매일 삶과 죽음을 갈랐다.』


 

9. 임신한 뒤 사라지는 처녀들


정치범수용소에서 저질러지는 만행 중 하나는 성적(性的)유린이다. 보위원들은 여성들을 건드리고, 임신(姙娠) 등 문제가 생기면 그 여성은 「사라진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순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임신한 처녀가 사라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 신씨의 설명이다. 공장에서 남녀가 눈이 맞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남자, 여자 모두 사라진다. 신씨의 동급생 「춘영'이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춘영이가 임신한 사실은 나를 포함하여 같은 학급 동창생들만 4명 정도가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비밀로 지켜주고 있었다. 그러나 춘영이의 배가 점점 불러 오면서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녀는 끝내 들키어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보위지도원은 곱게 생긴 여자 아이들을 마음대로 갖고 논다. 그래도 그 누구도 아무런 처벌을 할 수 없다.』


보위원들은 처녀들에 대한 강간·추행 등을 저지르고 역시 문제가 되면 죽여 버린다. 신씨의 사촌누나 「혜숙」은 1996년 9월 억울하게 죽어갔다. 미쳐버린 숙모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 버렸다.


『어느 날 숙모와 사촌누나 신혜숙이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올라갔다. 9월경은 도토리를 줍는 시기이다. 그러던 중 경비대 눈에 들켰다(허가 없는 도토리 줍기는 금지돼 있다).

그들은 숙모와 사촌누나를 불러놓고 경계선까지 올라왔다고 하면서 말을 시키다가 사촌누이에게로 눈길이 쏠렸다...


누나는 맨 알몸으로 성폭행을 당한 채 기절하였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숙모는 정신이 돌아서 그 다음날 새벽 길바닥에 앉아 경비대 새끼들이 내 딸을 죽였다며 통곡을 하다 어디론가 잡혀갔다. 그리고는 소식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하나 둘씩 사라졌다.』 


10. 김정일을 심판대에 세우자


우리는 죄인(罪人)이다. 동족의 아픔에 침묵해 온 죄인들이다. 정상적인 민족, 상식적인 백성이라면 저들을 구하기 위해 땅굴이라도 뚫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입을 닫았고, 눈을 감았다. 심지어 악마(惡魔)에 조력(助力)했다.


사명(使命)은 신성(神聖)한 것이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고 민족의 원수인 김정일을 심판하는 것은 신(神)이 내린 성(聖)스러운 겨레의 사명이다.


한국이 이 사명을 이뤄낸다면 하늘도 축복할 것이다. 선진강국, 일류국가를 이뤄낼 것이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신혜숙이 우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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