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장성택 숙청과 유례없는 그 측근의 공개 처형에 대해
입만 열면 인권과 정의를, 공안 탄압 중단을 외치던 국내 인사들의 반응을…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장성택 숙청과 그 측근의 공개 처형에 대해 인권과 정의를 부르짖는 국내 인사들의 반응을. 이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뉴스인가. 입만 열면 공안 탄압 중단과 박 대통령 퇴진을 외치면서, "북한에서 본보기식으로 공개 처형된 사람이 작년에는 17명이었지만 올해만 40여명에 이른다"는 현실에는 침묵하고 있다.
"독재 정권을 더 이상 용인 않겠다"는 통진당 이정희 대표도 세상에 유례가 없는 독재 세습 정권의 퇴진에 대해서는 토씨 하나 달지 못한다. '평화'를 내세우며 여전히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위를 주도하는 운동가들도 잔혹한 공포정치에 대해서는 떠들지 않는다. 국내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참견하고, 논평하고, 선동하고, 트윗을 날려대는 좌파 성향 명망가들도 일제히 잠잠해졌다.
각종 시위와 분규 현장마다 '생명과 인권 존중'을 위해 투쟁해온 유수의 단체들 역시 충격적인 공개 처형 사태에는 성명서 한 줄 내지 않았다. 그 치하에서 동족들이 숨죽여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명과 인권만은 유일하게 개입해서는 안 되는 성역인 것 같다.
'불의에 맞서 싸울 의무가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떤 고난이 있어도 그 길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의구현사제단의 패기는 왜 국내용으로만 그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평양 거리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미사 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자신이 그동안 신봉해온 무엇이 허물어질까봐 불편하다면 연평도 포격이 정당한 것처럼 발언했던 신부처럼 입을 열 수도 있다.
"NLL(서해북방한계선)에서 한·미 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이라는 표현을 약간만 손질해도 된다. "백두 혈통을 보존하려면 덤벼드는 놈을 어떻게 하겠는가.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유일 세습 체제를 위해서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이번 숙청과 공개 처형 사건이다."
눈만 한번 질끈 감으면 더욱 충성심을 발휘할 기회도 된다. 몇 달 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이석기 사태'에 대해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파쇼 독재 강화와 북남 대화 분위기 파괴를 노린 새로운 정치 모략 행위"라고 논평해줬듯이, 이에 답례할 차례가 온 것이다. 고개를 내밀어 서른 살 독재자를 위해 호위 장수 역할을 맡겠다면 그 공로는 북에서 영구히 지워지지 않을 텐데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종북주의자'라고 인정한 이들은 없지만, 혹시 환상을 가졌거나 막연히 동조해온 이들이라면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뒤늦게 환각에서 깨어났다. 악마 같은 공포정치의 실상을 봤다"라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런 고백을 들을 수 있을까.
좌파 이념을 종북으로 몰고가는 것이나, '종북이냐 아니냐'로 분류하는 것에는 난 결코 동의한 적이 없다. 민주사회라면 어떤 이념과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세계 최악의 수용소 국가를 운영하는 독재자를 향해 '내재적 접근법'이라며 궤변을 늘어놓는 부류들을 혐오할 뿐이다. 아무리 자유라 해도 히틀러와 스탈린을 공개적으로 옹호할 자유가 없는 것처럼, 북한 주민들을 탄압하는 독재자를 신봉할 자유는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북한 앞에서만 입을 닫는 인사들이 생겨났듯이, 민주당도 북한 정권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장성택 실각설을 놓고 정부가 오락가락한다"는 논평을 내고는 일주일 넘게 입이 없다. 대선 불복의 유혹에만 매달려 다른 것은 봐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북의 공개 처형이 당 공식회의에서 의제가 된 적도 없다.
'공포정치에 의한 북한 정권의 주민 탄압을 우리는 심히 우려한다'는 논평조차 하나 내지 못하는 민주당을 보면, 왜 이길 수밖에 없는 지난 선거에서 졌는지, 자신의 실패가 어디서 비롯되는지에 대해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당사자였던 문재인 의원은 자신의 책에서 당시를 반성하면서도 '천안함 폭침'을 여전히 '천안함 침몰'이라고 쓰고 있다. 대선 때 국민들은 그와 그를 둘러싼 세력을 정확하게 본 것이다. 구도상 야당이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였지만 어쩌면 중도와 우파는 생존의 본능으로 결합해 역전시켜 버린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만약 대통령 자리의 주인이 바뀌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걸로 사람들은 위안을 삼고 있다. 이런 잠복된 두려움은 다음 선거에도 계속 작용할 것이다.
야당은 앞날을 기약하려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위험하지 않다는 걸 입증시키고 믿게 해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치권에서도 이념과 정책의 자유로운 시장 경쟁이 형성되고 국민들이 비교 선택할 폭도 넓어지는 것이다. 저 북한 정권의 숙청과 공개 처형, 주민들의 공포에 대해 먼저 응답해야 한다.
- 최보식 | 선임기자 20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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